배우 패트릭 스웨이지가 5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AP 등 외신은 14일(현지시간) 패트릭 스웨이지가 췌장암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스웨이지의 대변인 아네트 울프는 이날 저녁 “지난 20개월간 병마와 싸워왔던 패트릭 스웨이지가 가족 곁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스웨이지는 LA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사망했다”며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밝히길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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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이지는 2008년 1월 암 진단을 받으며 이미 간까지 암이 전이됐다고 알려졌으나 이후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TV 드라마 “더 비스트”에 출연하는 등 열정을 보여왔다. 스웨이지는 특히 드라마 촬영 중 연기에 방해가 된다며 진통제마저 거부하는 투혼을 보여 이 같은 소식은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1월 스웨이지는 ABC채널의 바바라 월터스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5년간 더 살기 원하지만 의학적 견해로는 2년정도 남았다”며 “하지만 치료될 때까지 버텨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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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영혼>에서 패트릭 스웨이지가 데미 무어와 함께 훗날 너무나도 유명해진 물레 장면을 찍고 있다.


스웨이지의 사망 소식에 할리우드 스타들 역시 속속 명복을 비는 소감을 밝히고 있다. 스웨이지와 <사랑과 영혼>에 출연했던 데미 무어는 트위터에 “패트릭 당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며 당신의 빛은 우리의 삶을 영원히 비춰줄 것”이란 글을 남겼다. 우피 골드버그는 엑세스 할리우드를 통해 “패트릭은 정말 재밌고 좋은 남자였으며 나는 평생 갚지 못할 만큼 많은 빚을 졌다”면서 “나는 <사랑과 영혼>을 믿는다. 그는 언제나 근처에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래리 킹은 “패트릭 스웨이지는 훌륭하며 놀라운 배우였다”며 “그는 모든 일에 전심을 다했으며 암과도 훌륭히 싸우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킹은 또 화요일 밤에 CNN에서 진행되는 자신의 쇼에서 스웨이지를 추모하는 방송을 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스웨이지는 1952년 미국 휴스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미식축구와 춤 등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브로드웨이로 진출하기 전에는 뉴욕 발레단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브로드웨이에선 대니 주코의 ‘그리스’에 출연하며 할리우드의 관심을 받았고 1979년 <스케이트타운>에서 단역으로 데뷔하며 배우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작 <더 비스트>까지 총 47편의 영화·TV드라마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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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댄싱> <사랑과 영혼> <더티 댄싱2>(왼쪽부터) 포스터.




스웨이지는 1987년 영화 <더티 댄싱>에서 죠니 캐슬 역으로 할리우드의 톱스타 위치에 올랐다. <더티 댄싱>은 미국에서만 6천4백만 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였으며 전세계적으론 2억1천4백만 달러라는 놀라운 흥행수입을 거뒀다.

1990년 제리 주커 감독의 <사랑과 영혼>은 스웨이지에게 더 큰 부와 명예를 안겨줬다. <사랑과 영혼>은 미국에서만 2억1천7백만 달러를 벌여들였으며 전세계적으론 5억5백만 달러라는 수입을 기록했다.

<사랑과 영혼>에선 데미 무어의 상대역으로 죽어서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연인 곁에서 유령이 되어 머무는 샘 역을 맡았으며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에서 샘을 돕는 심령술사로 출연했던 우피 골드버그는 오스카 상을 거머줬으며 당시 인터뷰를 통해 “스웨이지가 제리 주커 감독을 설득해서 나의 출연을 도왔다”고 소감을 전한 바 있다.

스웨이지는 <더티 댄싱>과 <사랑과 영혼>의 성공 이후 후속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며 알코올 중독 등의 문제들로 고생을 했다. 텍사스로 다시 이사하여 2001년 <그린 드래곤> <도니 다코>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1975년에 배우겸 영화감독 리사 니에미이와 결혼했으며 2003년 <더티 댄싱2>에 나란히 출연하기도 했다. 스웨이지는 <더티 댄싱> <사랑과 영혼> <투 웡 푸>로 3차례 골든 글로브 후보자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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